1. 웹기반수업과 이러닝
학계에서 웹기반수업(Web-Based Instruction)이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인 것 같습니다. Kahn이라는 학자가 교육공학자들의 웹기반수업에 대한 글들을 편집하여 Web-Based Instruction이라는 책을 내면서부터 세계적으로 웹기반으로 수업을 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과 접목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때 구성주의(constructivism)이 국내 교육계를 강타하면서 너도 나도 구성주의적인 학습환경, 구성주의 교수학습모형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미국이 하면 하는 상당히 미국 의존적인 학문적인 트렌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대학들을 중심으로 웹기반으로 수업을 해보자라는 움직임이 있어 왔고, 국내에는 서울대에서 처음 웹기반수업을 위한 교수학습지원센터가 열렸다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때의 웹기반수업은 수업자료를 프린트물(handout)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글들 게시판에 업로드 하여 읽을 수 있도록 한다던지, PDF로 변환해서, 아니면 한글파일을 그대로 첨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에 멀티미디어를 접목한다는 미명 아래 오프라인 수업의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 그대로 올리고,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복습과 나머지 공부를 했겠지요.
어떠세요.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의 이러닝 환경과 웹기반수업 도입 초기의 모습이. 기반기술과 제작과 활용의 편리성만 제외하면 옛날과 지금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과거로의 회귀일까요, 양적인 질적인 발전 없음일까요?
2. 학습자의 관점에서 본 HTML5 이러닝 콘텐츠
웹기반수업이 활성화되면서 이것을 기업교육에도 적용하자라는 움직임도 활성화되면서 기업용 위탁교육을 위한 업체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도 초반인 것 같습니다. 특정 업체가 대기업을 끼고 사업하는 위탁사업의 거의 모든 개발 물량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성장해 온 성공신화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회사 출신들이 이러닝 시장의 곳곳에서 전략가들로, 실행자들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던 이러닝 콘텐츠는 HTML 기반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플래시로 만들어진 이러닝 콘텐츠오 HTML에서 embed 되지 못하면 볼 수 없기 때문에 HTML 기반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때는 모든 콘텐츠를 HTML로 코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오직 HTML로만 만들었더랬습니다.
우리가 콘텐츠 설계/개발 하면서 많이 사용하는 탭클릭 이벤트를 구현하기 위해서 HTML에서 제공하는 테이블과 레이어 기능을 이용해서 코딩을 하면서 픽셀을 맞추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러다가 플래시가 혜성같이 등장했고, 테이블로 레이어를 짜서 탭 클릭 이벤트를 하는 '노가다'는 기억속에 뭍히기 시작합니다. 개발사들은 환호했고, 학습자들도 신기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10여년이 흘러 다시 '탈플래시'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 테이블과 레이어로 만들었던 이러닝 콘텐츠. 페이지별로 성우의 음성도 없고, 음성에 맞춰 작 정비된 도식화 자료들도 동기화되어 나타나지도 않는, 지금으로 본다면 아주 조악한 품질의 콘텐츠일 것입니다. 학습자들의 눈높이는 이미 멀티미디어로 화려하게 꾸며진 플래시형 이러닝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한번 높아진 눈높이가 과연 낮아질 수 있을까요?
HTML5라는 스펙이 공개되고, 이것을 지원하는 웹브라우저가 많아진다고 한들 학습자들의 높아진 눈높이가 다시 HTML 기반의 정적인 콘텐츠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물론 예전의 HTML 규격보다 HTML5의 규격이 더 상향되었기 때문에 사운드,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급한 사람들은 '더 이상 RIA는 필요없다'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플도 플래시를 미워하고 있기 때문에 RIA의 입지가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과연 이러닝 콘텐츠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학습자들에게 먹힐지'가 관건입니다.
'애니메이션과 화려한 디자인에 질렸어요'라고 이야기하는 학습자가 많은 것 또한 현실의 모습인데 반해, 다시 과거의 'HTML스러운' 조악해 보이는 품질의 콘텐츠로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학습자는 과연 '역시 플래시가 다는 아니었어'라고 평가를 해 줄까요?
진실은 모르겠습니다. 학습자도 모르고, 공급자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측은 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예측을 해서 시장에 치고 나가느냐가 중요 관전 포인트입니다.
3. 생산성과 개발 프레임워크
기업교육용 이러닝 콘텐츠 개발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개발 인력들의 역량을 살펴보면 '과연 HTML5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소위 '플래셔'라고 불리는 분들 중에는 HTML로 코딩을 할 줄 모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당연합니다. 그걸 알아야 할 이유가 없거든요.
'이러닝 콘텐츠=플래시'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HTML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어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반대로 HTML 개발 방법에 플래시를 추가로 배웠기 때문에 플래시에 대한 역량이 떨어졌었습니다. 그래서 구인공고에 '플래시 가능자 우대'라는 문구가 추가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요즘 이러닝 콘텐츠 디자인/개발 구인공고에 이런 문구가 있나요?
그렇다면 누가 HTML5 스펙을 가지고 이러닝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요? 고민해 볼 일입니다. 근 10년간 형성된 플래시 개발자들을 모두 새롭게 HTML5 기술보유자로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러닝 콘텐츠 개발사들은 영세합니다. 1년에 10억 미만의 매출을 올리고, 이익률도 10%를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HTML5에 대한 인력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느니 그냥 문 닫고 다른 일 하는게 속 편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HTML5가 뜬다네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는 HTML5로만 콘텐츠를 발주할거에요'라고 이야기하는 무책임한 발주사들이 있다면 그들이 현재의 이러닝 업계를 죽이는 장본인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식한 '갑'으로 군림할테니까요.
저작도구 시장도 타격이 클겁니다. 이러닝 콘텐츠 저작도구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최종 산출물은 플래시로 나오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걸 HTML5 스펙으로 변환해야 한다면 그게 어디 보통 일일까요? 그 동안 축적해 놓은 기술개발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제3의 HTML5 기반 개발 프레임워크가 나름 표준화되어 나오지 않고서는, 그것도 플래시로 만들었을 때와 비교해서 생산성과 비용효율성이 떨어지지 않는 형태로 나오지 않고서는, 기업교육용 이러닝 업계에서 플래시를 버리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동영상 기반의 이러닝 사업에서 IE에서만 돌아가는 ActiveX로 만들어진 동영상 플레이어를 걷어내지 못하는 이유와 유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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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의 눈높이, 플래시만 할 줄 아는 콘텐츠 개발자들, 영세한 수익구조를 갖고 있는 콘텐츠 전문개발 업체들, 생산성 낮은 저작도구. 이러한 것들이 HTML5를 이러닝 업계에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의 장벽들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콘텐츠의 불법 유출도 큰 몫을 할 것이고요.
그러나 시대는 웹표준을 요구하고 있고, 크로스 브라우징/크로스 플랫폼을 지향하는 이러닝 서비스를 찾고 있습니다. 이동하면서 학습하기를 원하고, 필요할 때 적시에 활용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전략을 짜고 대응해야 할까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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